Project Description
나는 공예를 전공한 사진작가이다.
집, 작업실을 오가며 일상 속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가진 美를 살피며 그 속에서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희(遊戲, pastime) 요소를 찾아 아름다운 사물을 내 삶과 함께 하고자 늘 집중한다. ‘공예적 가치를 따르는 삶’ 안에서 사색의 시간은 성찰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나의 정신적 ‘쉼’이 된다. 모든 것은 환경에 순응하여 만들어진 것이기에 나의 삶의 순응은 전공과 무관하지 않다. 이십여 년 전부터 사물을 수집하는 행위의 원류는 타고난 천성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낡고 때(dirt)묻은 것을 대할 때 오는 안도감. 그것들을 모아 곁에 두는 집착에서 이뤄진다. 나의 수집물은 인간의 삶과 함께하며 공유한 ‘오래된 색’을 담고 있는 모든 사물이 된다.
‘시간이 만들어 내는 색’
‘시간의 흔적(痕跡, mark)’
흐르는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 빛을 잃고, 탁해지고 벗겨져 허물어지는 것.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 이것은 인간의 삶과도 흡사하다. 사물들은 제 각자의 흔적을 남기며 늙어가는 것이다.
장난감과 가방, 문(門)
기호화된 사물을 통해 그 사물들이 담고 있는 인간과 함께한 손길을 거쳐 자연의 시간성을 더한 뒤 소멸 되는 과정을 기록한다. 그 위에 슬어 있는 땀의 체취와 자연의 비가 만들어낸 철의 녹, 빛과 바람이 만들어 낸 갈라짐, 변색, 긁혀짐, 벗겨짐 들로 ‘흔적’을 표현고자 하는 것이다. 즉, 그것들의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표면을 집요하게 살핀다. 관찰하고 눈으로 담아 사진의 피사체에 전달하여 존재감을 최대한 끌어내어, 마음을 움직이는 물성을 지닌 사물이 되길 바란다. 이 결과물은 벽으로 가는 사물인 사진 작업이 되는 것이다.
나의 산물들이 전시장를 위한 작업이기보다 삶 안에 공유되어 사용되어지길 원한다. 벽, 바닥, 모퉁이의 공간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사용가치를 만드는 일. 즉, 벽을 위한 평면작업, 바닥을 위한 입체작업. 그것들이 수집된 오래된 사물들과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통해 보는 또는 사용하는 이에게 삶 안에서 익숙한 음미(吟味, appreciation)의 시간을 향유되길 바란다. 수집된 연륜(年輪, annual)의 색을 눈으로 담아 현재의 사물인 오브제에 색을 만들어 덧입힌다. 이 사물은 시간을 머금고 다시 흔적을 남길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한 시간을 담은 흔적이 되어 수십 년 뒤 나의 평면작업의 재료가 되어 줄 것이며, 이것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인 것이다. 나의 표현의 행위도 사물의 시간성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는 것이다.
2015 허명욱